개인주의가 가능할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기는 가능한 것일까? 회식을 극혐하는 내향형이 있고, 회식과 워크샵을 갈 것을 주장하는 외향형이 있다. 내향형은 날 그냥 내버려두라고 생각하지만, 외향형은 같이 회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내향형을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회식을 권하는 외향형은 내향형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걸까? 아니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에서 외향형의 사교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 내향형이 외향형에게 피해를 주는걸까. 사회에 만연해 있는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도 비슷한 것 같다. 그들을 '개독'이라 부르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무교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멀쩡하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악담을 퍼붓거나, 이야기만 시작되면 교회를 가야한다고 전도를 한다. 이것은 기독교인이 무교에게 피해를 주는건가? 예전 같으면 가만히 있는 나를 왜 건드리냐고 피해 주지 말라고 단순하게 소리칠 문제들이 그렇게 쉽지 않은 문제로 느껴진다.


유튜브 채널 개설 일년 후

지난 4월 초 챗GPT 영상의 폭발로 유튜브 수익화 조건을 만족하게 되었다. 기존 2천명 정도의 구독자에서 빠르게 2천명이 더 늘어났다. 단기간에 늘어난 2천명은 내 채널의 충성 시청자라고 보기 힘든 허수에 가깝다. 실제로 구독자가 두 배 정도 늘어났지만 그 전후로 시청시간은 괄목할만한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멤버십을 통한 수익화 이야기다. 기존 내 영상을 보고 너무 도움이 되겠다고 한 사람들, 멤버십이 있다면 반드시 가입하겠다던 사람들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결국 컨텐츠에 대한 만족은 '무료임을 전제로 한' 만족감인 것이다. 멤버십 가입을 촉진하기 위해서 유튜브에서는 여러가지 제안을 한다. 영상 중에 멤버십에 대해 언급을 하라든가, 멤버십에 대한 혜택을 차별화 하라는 등의 이야기다. 한 두 달 실험들을 해보며 내 채널의 멤버십은 그런 식을 활성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내가 운동을 하고 싶어서 헬스장에 등록해서 즐겁게 지내고 있는데, 옆에 있던 트레이너가 와서 PT를 받아볼 것을 권유한다. PT를 받으면 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굳이 그 정도까지 나는 운동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트레이너는 옆에 다가와서 PT를 받아볼 것을 넌지시 권한다. 나는 점차 부담스러워서 헬스장을 가지 않게 된다. 이것이 지금 내 유튜브 채널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나리오다. 내가 멤버십 언급을 하면 할수록 조회수와 구독자가 줄어든다 (또는 증가세가 줄어든다) 결국은 타겟 고객의 문제다. 내가 큰 돈을 내고 PT를 받는다면, 나는 이미 PT의 유용성에 대해서 느끼고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이다. 그렇다면 내 채널의 멤버십 역시도 이런 주제에 대해 심도있게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 대상이어야 한다. 라이트한 시청자들에게 자꾸 "PT"를 권하는 것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멤버십 영상 홍보 게시물을 모두 삭제 했다. 영상 내에서 멤버십 홍보 배너가 딱 두 번씩 뜨는 것만 남겨 두었다. 타겟 고객을 설정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예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컨텐츠 분야에서는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받는 고객을 만족 시켜야겠다는 부담감은 점차 나답지 못한 컨텐츠를 만들고 이것은 기존에 내 컨텐츠에 만족하던 시청자들도 떠나게 만든다. 1. 날파리 같이 귀찮게 홍보하지 않기 2. 시청자를 고려하되 나다움을 잃지 않기 개설 후 일 년이 지난 시점 새로운 실험이 필요한 시점이다.


푸틴의 눈빛

난 푸틴의 강인해 보이는 눈빛 속에서, '내가 찐따가 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같이 보이는데 같은 INTJ라 그런건가...


내가 적합한 곳

흔히 시스템이 완성된 곳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과, 맨 바닥에서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한다. 나는 규모가 있는 기업에서 시스템을 만들고 그에 맞춰 일하는 것에 강점이 있다. 반면 맨바닥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쌓아올리는 것을 좋아한다. 후자에 대해 '강점'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환경에서는 일을 잘하고 못함이 결과로 빠르고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 대표의 독단에 의해 결과가 평가된다. 내가 그런 제로 베이스에서 일을 할 역량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독단적인 기준에 승복할 마음이 없다는거지.


애플워치 잠금해제

맥북을 쓴지는 십 년이 넘고 맥스튜디오, 아이패드, 아이폰 생태계를 다 경험한 사람 치고는 애플워치를 뒤늦게 접하게 되었다. 딱히 워치로 할 일이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 있었는데, 조만간 교통카드 지원이 될 것이라고 하는 소식에 바로 질렀다. 근데 역시 생태계의 애플이라는 것에 걸맞게 패스워드 입력 없이 맥 잠금해제 되는 것만으로도 신세계다. 그나마 지문인식 있는 맥북은 괜찮은데, 바밀로 키보드를 쓰고 있는 맥스튜디오는 항상 패스워드를 직접 타이핑 해야 해서 매우 귀찮았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스윽~ 열리는게 기분이 너무 좋은걸...


잘 된 광고 문구

길을 걷다가 보게 된 광고 문구인데 매우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피부가 좋아진다'는 결과를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이 미용을 받는 본질적인 심리를 조금 더 자극하고 들어간 문구다. 나의 미용은 남을 의식하는 부분이 큰데, 타인에게 피부가 좋아졌다는 칭찬을 듣게 된다니 얼마나 고객의 마음을 자극하는 문구인가.


자기 관리론

내일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날이다. 요즘 들어 걱정이 많아진 느낌이다. 가진 것들이 더 늘어나서일 수도 있고, 욕심이 더 늘어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유학 생활 동안의 실패와 고통이 30대의 강한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실패다운 실패를 맛본 적이 없었다. 20대의 고통과 실패의 약발이 다 된 느낌이다. 실패는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최근 몇 년 간 다시 실패를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실패를 하려면 무엇인가 도전을 해야 한다. 실패라는 백신을 한 번 맞을 때가 된 것 같은데, 실패를 딱히 하지 못하니 더 불안해 지는 것 같다. 그래서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아진다. 오랜만에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을 읽었다. 이 책이 나온 시기만을 놓고 보면 진부하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이 어제 나온 책이라면 혁신적이라 평가 받았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걱정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봤다. 결국 과거와 미래로 가는 문을 닫아 버리고,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것만이 걱정을 없애고 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오랜만에 명상을 했다. 마음이 꽤 차분해졌다.


기묘한 할머니의 비밀스런 취미생활

애들 동화책 보고 따라 그리는거 재밌쪙~


포베온 센서

포베온 센서는 구닥다리 느낌이라 팔아버려야지 싶다가도, 사진 결과물을 한 번 보고 나면 죽을 때까지 갖고 가야지 싶다. 화소수가 낮은데 확대를 해도 디테일이 정말 무시무시하다.


나 혼자 짜장

몇 년 만에 혼자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혼자 먹는 짜장은 언제나 낭만이 있단 말이지. 옆좌석에 구마적이 앉아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