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세계는 없다 (Feat. 희망버리기 기술 - 마크 맨슨)

나는 의경 생활을 하면서, 경찰 내부의 허술함을 범죄자들이 알아챈다면 우리나라의 범죄율이 급격하게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절도가 발생했을 때 조사는 매우 허술해 보였고, 추운 겨울 새벽 동네 순찰을 돌 때는 건성건성 시간을 떼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사회에서 보았던 경찰의 느낌과 확연히 차이가 났던 그들 내부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의경 복무시절이 다시 떠올랐던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몇 개의 회사를 경험했을 때였다. 외부에 노출되는 것은 번쩍거리는 광고판, 유명한 연예인이 등장하는 티비 광고, 정갈한 느낌의 서비스 앱이었지만, 그 내부의 운영과 개발은 하루하루가 진흙탕 같았다. 물 위에 우아하게 떠있는 오리가 수면 아래에서는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처럼, 고객에게 우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조직의 내부는 난장판이었다.

비즈니스 기능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 하드코딩을 사용해서 기술 부채는 쌓여가고, 그 사이사이 개발자의 입사와 퇴사로 인한 인수인계 비용이 발생했다. 대규모의 서비스를 마이크로 서비스 아키텍쳐(MSA)로 바꾸는 과정에서 개발자들은 그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각 시스템의 MSA 전환은 힘을 받지 못했다. 근 2년 간의 MSA 전환이 이루어졌을 때 회사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MSA를 도입한 그룹중 하나로 소개되며 그 기술력을 자랑했다.

항상 우리는 내부에서 관찰하며 스스로를 과소평가 한다. 너무 많은 정보를 알기 때문에 과소평가 하게 되는 현실과는 달리 밖에서 보면 우리는 꽤 그럴싸해 보인다. 바꾸어 말하면 멋진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진흙탕을 굴러 다닌다고 할 수도 있다. 커리어가 진행될수록 일은 점차 복잡해지고, 커뮤니케이션도 쉽지 않다.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진흙탕에 구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옷에 묻은 흙을 다 털어내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얼굴에는 항상 자신감을 보이며, 구성원들에게 자신감을 전파해야 하는 일을 해야한다는 것도 깨닫는다.

의경생활만을 경험했거나 내가 하나의 회사만 다녔다면 나는 여전히 우아한 세계를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숱한 경험을 통해 우아한 세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진흙탕이 당연한 것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자책하지 않아도 되고, 당연하게 진흙탕을 구르면 된다.

허술해 보이는 경찰조직이지만 경찰의 활동은 범죄율을 떨어뜨린다. 완벽함이 아닌 확률의 문제다. 우리는 힘들고 느리게 앞으로 나아가지만 가치를 조금씩 만들고 있다. 완벽함이 아닌 점진적인 개선이다. 이 과정에서 성취를 느끼고 성장할 수 있다. 우아한 세계에 대한 기대만 버린다면 우리의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