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찍는 사진을 업로드 하면서, 사진에 대한 영향력을 더 늘리고 싶었으나, 몇 년이 지나도록 팔로워는 100명 이상도 늘지 않았고, 심지어 있는 팔로워들조차 자신들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면, 자기들도 눌러주는 품앗이의 행태를 너무나 보여주는 관계로, 이 채널의 효용이 다했다고 생각해서 모든 사진을 삭제했다. 한 500장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매몰 비용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없다. 영향력을 증대시킬 방법을 못 찾는게 너무 화가날 뿐...

나는 어렸을 때 엄마가 직장을 다닌 관계로 이모의 손에 자랐다. 이모는 말 그대로 나에게 또 다른 엄마 같은 존재인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종종 불편함이 느껴지는 경우가 생겼다. 동기나 후배들이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면서, '이모! 여기 뭐뭐 주세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나에게 이모는 가족이며,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인데 식당 아주머니를 이모라고 부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즘은 청소해주는 이모라는 말도 종종 들리고, 심지어 로봇 청소기 리뷰에 청소하는 이모 한 명 들인다 생각하고 장만하라는 글도 보인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모라는 말은 '어머니의 여자 형제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되어있다. 언어는 시대와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항상 변화한다지만, 이모라는 단어가 이렇게 하찮게 쓰이는 세태가 썩 달갑지가 않다.

몇 주 전 주문한 맥 스튜디오가 6월 말에서 7월 초가 되어야 도착한다니... 난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걸까? 심지어 같이 주문한 모니터는 7월 말이 지나야 올 것 같은데 본체만 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예상 배송 일정보다 좀 더 빨리오는 경우는 없을까? 좀 더 빨리 오면 좋겠다. 지금 쓰고 있는 아이맥 27인치는 당근마켓에 팔아야지.

남이은이 이가 흔들린다며 왔다. 생각해보니 젖니가 빠지는 나이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흔들어 보니 매우 흔들거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빠질 것 같았다. 어릴 때 내가 젖니를 뽑는 것에 익숙해서 남이은을 잘 달래서 앞니를 쏙 뽑아 주었다. 별로 안 아프게 뽑아줬더니 아빠에 대한 신뢰가 생긴 느낌이다. 심장 소리 듣던게 엊그제 같은데, 남이은이 벌써 젖니가 빠질 나이가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의 감정은 꾸며낼 수 없다. 행복함이 그렇고 자신감도 그렇고, 절박함도 그렇다. 오늘 드디어 꾸며내지 않은 절박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느낌은 꽤 불안하기는 했지만, 내가 앞으로 나아갈 진정한 동력이 된다는 생각에 기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부터 3일 이상의 연휴를 견디기가 힘들다. 무기력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지속되면서 실제로 몸이 아프게 된다.

주말에 남이은만 데리고 예술의 전당에 가서 앤서니 브라운의 전시를 보고 왔다. 원래는 경복궁 가서 궁궐 보여주려고 했는데, 양재 IC까지 가는데 한 시간, 거기서 한 시간은 더 걸린다는데, 차가 아예 옴싹달싹 하지 않아서 목적지를 변경한 것이다. 전시를 보는 내내 시끄러운 소리와 밀려드는 인파에 제대로 된 감상은 할 수 없었지만, 딸과 추억을 만든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오는 길에 도록을 하나 사서 (무려 4만원...) 집에 와서 따라 그리고 놀았다.

오늘 아우디 A8을 인수했다. 작년부터 볼보 S90을 걸어놨다가, 아우디 A8 2022년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계약금을 걸어놨다가, A7에도 걸어놨다가, 벤츠 CLS450에도 걸어놨다가, 결국은 2021년형 아우디 A8L으로 결정했다. 일단 A8 2022 페리는 언제 한국에 들어올지 모른다는 점과, 출시 초기에는 할인 가격이 적을 것이라 예상해서 제외했고, A7과 CLS는 솔직히 1억 정도의 돈을 주고 사기에는 돈이 아까운 느낌... 결혼전에도 이전 버전의 CLS를 탔었는데 그렇게 좁다는 느낌은 못 받았는데, 지금 CLS는 앞뒤좌석 할 것 없이 왜 그렇게 좁아 터진건지. A7은 인테리어가 왜 그렇게 저렴해 보이는지... 결국 2021년형 A8로 왔고 결과적으로는 만족한다. 플래그십 자체가 주는 포스와 뽀대가 있었고, 승차감도 좋은 편이라 패밀리카로 쓰기에 괜찮을 것 같다. 문을 열면 반겨주는 웰컴 라이트가 뒷좌석 문을 열 때만 나온다는 점에서, 벤츠 S에 비해서는 뒷좌석 회장님이 아닌 운전자를 고려한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뒷좌석을 우선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붕붕이가 생겼으니 카페 가서 일도 하고 하려 했는데, 주유를 했더니 14만원이 넘게 나왔다. 쫄아서 어디 못가겠다.

춤을 추기를 기대하고 화분에 심었던 무초가 결국 모두 죽었다. 너무 쉽게 발아가 되어서 어렵지 않다 생각했는데, 첫 번째 싹들이 조금씩 키가 자라나 싶다가 모두 드러누워 버렸다. 생명을 키우는게 이처럼 쉽지 않다 싶다가도, 무초의 싹이 이렇게 나약하다면 자연상태에서 무초는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열량의 마가렛트를 한 박스 먹어도 살 안 찌던 리즈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방 정리 하고 있는데 애가 와서 자꾸 어지르는 기분. 애야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방정리 하는 사람 입장에서 짜증날 뿐.

표면적 행복, 일방적 행복, 일시적 행복이라도 행복이겠지

나는 비즈니스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람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기이한 재주를 뽐내는 사람들 중에 대다수는 매우 특별한 시련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련은 그들을 절박하게 만들었고, 그 길이 아니면 안되도록 몰아갔다. 최고의 결과를 만들려면 절박감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절박감이라는 놈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만드는 고난은 후에 내가 통제하지 못한 고난의 상황을 줄여준다'는 팀 패리스의 말처럼, 고난으로 들어가 절박감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 다가오는 느낌적인 느낌.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시도해 볼만한 것들을 찾아 낸 사람들은 정말 그 일을 사랑해서일까, 아니면 상황에 떠밀려 그 일에 올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만들어져서일까.

어릴 때는 사오정이니 오륙도 같은 얘기를 들으면 먼나라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데 40대 중반이 된 지금 이런 고민이 현실로 다가온다. 어릴 때는 내 능력만 있으면 어디서든 쓰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면, 지금은 내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내가 혼자 해낼 수 있는 부분은 미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어느 조직이든 피라미드 조직구조이므로 뛰어난 능력이 때로는 그들이 나와 같이 일할 이유보다 나를 경계하고 배척해야 될 이유가 될 수 있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일을 할 수 없고 상사의 스타일 대로 일을 해야 인정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결국은 회사가 나에게 먹이를 더 이상 주지 않았을 때 내가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하는 의문으로 귀결된다. 나는 회사라는 곳을 이용하지 않고 자생할 수 있을까? 회사를 이용하는 것은 과연 몇 살까지 가능할까? 이런 고민들이 깊어진다.

무초의 싹이 생각보다 잘 자라서 10~11개의 싹이 보인다. 무초가 춤을 추는 그날까지 기다려 보자.

아이들이 책을 보다가 노래를 들으면 춤을 추는 식물이 있다는 제보를 해주었다. 반신반의 하다가 유튜브를 찾아봤더니 정말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는 무초라는 식물이 있었다. 흥미가 생겨 화분, 흙, 그리고 무초 씨앗을 주문했다. 물에 무초 씨를 불려 화분에 넣어준지 2~3일째, 모두 발아에 실패했나 생각했는데, 싹 두 개가 쏙 고개를 내밀었다. 남아있던 씨앗들도 물에 불리는 중. 2차 파종을 하고 좀 더 싹이 많이 나기를 기다려 봐야곘다. 다 자라면 노래 들려주고 춤추는 영상도 찍어봐야지.

늘 챙겨보는 나는 솔로. 이번 7기는 정말 총체적 난국이다...

원래 무선 마우스는 게임시 딜레이 때문에 고려를 하지 않았는데, 무선 기술의 발달로 딜레이가 아예 사라졌다고 하기도 하고, 마우스가 좋다는 소문이 너무 많아 지슈라를 구입했다. 업무용으로는 맥을 사용해서 어차피 매직패드를 사용하고, 마우스를 사용할 일은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 밖에 없다. 지슈라를 사용해 본 소감을 한 마디로 하면, '이제부터 스타를 졌을 때 장비탓을 할 수는 없겠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클릭을 했을 때 일꾼이 잘 집어지지 않는 문제가 사라졌다. 마우스의 차이로 이런 클릭감이 달라지다니 정말 신기하다. 기분이 좋아서 게임을 너무 많이 하게 되는게 문제라면 문제.

사람들은 결핍을 느낄 때 소비를 한다. 결핍은 실제적 결핍과 심리적 결핍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돈이 100억이 있어, 5억 짜리 차를 언제든 구매할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차가 정말 필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내 돈을 거기에 쓰는 것이 적절한지 다시 한 번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돈 한푼이 없는 상태라면, 실제로 차가 필요한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나의 심리적 결핍감은 극대화 될 것이다. 내가 살 수 없기 때문에 수퍼카는 너무나 가지고 싶은 내 욕망의 투영물이 된다. 이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요즘 유행하는 FIRE라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금 흐름이 충분히 들어올 때 아껴서 사는 것과, 더 이상의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 욕심을 줄이고 아껴서 사는 은퇴 후의 삶은 확연히 다를 수 있다. 실제 내가 지출하는 금액의 액수가 문제라기 보다는 내 마음의 측면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