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다시 본 아이다

2010년에 처음 아이다를 보고 12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아이다를 보게 되었다. 예전보다 여유가 좀 생기기도 했고 와이프와 관람하는 것이라 조금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예전 성남 아트센터에서 볼 때는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블루스퀘어의 사운드 시스템이 더 좋은지 첫번째 곡이 시작되면서 바로 소름이 돋았다.

Every Story Is a Love Story

현대를 배경으로 박물관 전시장에서 두 남녀가 스치듯이 마주친다. 갑자기 동상이 움직이며 노래를 시작하는데, 이 곡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조용하면서도 운명적인 사랑에 대해서 담담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노래하는 곡이기도 하고, 첫번째 장과 마지막 장이 수미상관을 이루는데 역할을 하는 곡이기도 하다. 공연이 끝날 때 왜 이 첫 장면이 나왔는지 알게 된다.

Fortune Favors the Brave

그 다음 장면에서는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곡 Fortune Favors the Brave가 나온다. 이집트 군인들이 거침없이 전진하는 기세를 잘 표현하는 곡이다. 이 노래는 한국어로 번역한 것보다 영어 가사로 들어보면 좀 더 기개가 잘 느껴진다.

클리셰가 주는 감동

아이다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클리셰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춘향전 등등 금지된 사랑이 얼마나 뜨거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인간은 정말 재밌다. 가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는 목숨까지 버리지만, 가지게 된 사랑은 때로 버려지고, 평생을 약속한 부부 간에는 이혼까지 한다. 이런 점에서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사랑은 죽음으로 끝이 난 것 때문에 더 아름답게 포장된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공연 내내 느낀 내면의 갈등

공연을 보는 내내 내 머리속은 세속적인 생각과 낭만적인 생각을 오가고 있었다.

‘아니… 국력이 약해서 다 망해버린 나라가 뭐라고 이렇게 지상 낙원처럼 포장을 하는거야?’

‘자신의 고국에 대해 이토록 강렬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니 벅차오르는구나’

‘약혼녀를 버리고 처음 본 여자에게 바람난 이야기잖아?’

‘운명적인 사랑은 이토록 강렬하고 아름답구나’

‘쟤들 저렇게 죽었으니 망정이지, 같이 결혼해서 살았으면 부부싸움 했을거야’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으로, 같이 죽는 것조차 아름답구나’

이렇게 보면 공연을 보던 3시간에 가까운 시간은 40대의 찌들은 자아와, 동심을 간직한 어린 시절의 내가 싸운 시간인 것 같기도 하다. 40대 자아와는 별개로 나의 동심 자아는 매우 감동을 받아서 눈물이 줄줄 흐르기도 했다

더 화려해진 공연

공연 자체로만 평가를 해보면, 12년 전 공연이 잘 기억이 나지 않기는 하지만, 그 때보다 매우 화려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집트 여왕 암네리스(아이비)가 의상을 착용하는 장면 (My Strongest Suit)에서는 조명이 100여 차례 바뀐다고 한다. 화려한 조명과 의상으로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장면이다. 다양한 색들의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것을 멀리서 보니, 수족관 안에 관상어를 보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집단이 가지는 힘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누비아의 백성들이 단체로(라고 해봐야 10명 남짓)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뭔가 비장함과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향해 사람의 마음이 모일 때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의 성원에도 이런 힘이 생기는데, 몇 백 몇 천명의 지지자를 만나는 정치인들은 뽕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정치인인데, 몇 백명 규모의 지지자가 나의 이름을 외친다면, 아드레날린은 솟구치고 내 한 목숨 바쳐 나라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겠지… (이것이 WWE 레슬러들이 약을 몸에 달고 살면서도 은퇴를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총평

티겟 가격은 12만원 정도였지만, 정말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매우 알차고 시간도 긴 공연이었다. 다른 뮤지컬을 몇 개 봤지만 아이다 만큼 몰입도가 좋았던건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는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에 잘 꾸며진 효과들이 어우러져서 그런 것 같다.

듣기로는 디즈니로 곧 판권이 넘어가면서, 기존 느낌의 공연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들었는데, 한 편으로는 아쉽기도 하고, 다른 편으로는 디즈니가 리메이크 할 아이다가 궁금하기도 하다. 10년 넘게 이어져온 현재 버전의 아이다를 관람하고 싶다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겠다.